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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댓가를 치른 토끼섬 구경)

 

전날 밤
궁전다리(Palace Bridge) 야경을 보다가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는데
부끄런 이야기지만
아마도 소매치기 일당에게
기획 쓰리를 당한 느낌이 듭니다.

강변의
다리가 잘 보이는 위치에는
거의 2중 3중으로 사람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었는데

러시아계 남녀가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유독 사람이 좀 적은 곳이 눈에 띄길래
무심코 거기에 섰더니
한5분 쯤 있다가 대여섯명이 뒤로 몰려와
마구 밀어 대는데 문득 바지 주머니가 허전해짐을 느꼈고
이미 지갑은 사라진 후였던거죠.

지갑에
현금은 얼마 없었지만
신용카드가 모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한 가운데서
갑자기
무일푼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여권은 호텔에 두고 갔었고
호텔비도 카드로 선지급한데다
스마트폰은 사진 찍느라 손에 들고 있었던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습니다.

우리는
야경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채
와이파이가 되는 호텔로 급히 돌아와
카드 분실신고부터 하고 프론트에 얘기했더니
직원 아가씨가 호텔 사장에게 말해서
공항까지의 택시비는 제공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공항까지
갈 수 있게 된 것만도 다행이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야
우리가 여기서 하루를 더 묵기로 한 의미가 무색해지고
더구나 내일 저녁 비행기 탈 때까지 쫄쫄 굶을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현금을 좀 만들어 볼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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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우리가
생각할 수 있었던 몇 가지 방법은
영사관을 찾아가는 방법,
선교사를 찾아가는 방법,
한국식당을 찾아가는 방법 등이었는데

얼핏
오늘 점심식사를 했던
카잔성당 뒷편의 서울식당이 생각 나더군요.
문제는
식당이 아침 11시에나 문을 연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오전중에는
피의 구원 사원 내부를 들어가 보고
알렉산더 넵스키 사원을 산책한 후
오후에 토끼섬을 둘러 볼 생각이었지만
모든 계획이 망가졌습니다.

호텔에서
조식을 마친 후
우리는
입장료가 없어서
피의 구원 사원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성당 외부와 근처 공원을 빙빙 돌면서
식당 문 열기만 기다리는
한심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죠.
ㅠㅠㅠ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식당 사장님께 말씀을 드려서
200불을 융통할 수 있었고
그 돈으로
점심도 먹고 토끼섬도 다녀 올 수 있었다는...
식당 주인 아주머니께는
지금도 감사 감사 ㅎ

근데
설상가상이라고
미리 가격협상을 안한 채 택시를 탔더니
토끼섬에 내려주면서
기사가 1,000루블을 내 놓으라네요.
시내에서 다리 하나 건너 온건데...
비싸야 얼마나 하랴 했더니
천문학적인 값을 요구합니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흰소리를 해보긴 했지만
기사는 들은 척도 안하면서
아예 택시 문을 잠가버리고는
'다바이'(давай. 자! 자! 얼른 돈내슈)만 외치는데
당할 재주가...
이렇게 해서
아주 비싼 댓가를 치르고

토끼섬을 구경하게 됐는데요...

***

(토끼섬)

(토끼섬 전경)


위 지도의
윗 쪽에 보이는 긴 다리가
'삼위일체 다리'(Троицкий мост, 트로이츠끼 모스트)로
도시 중심으로 연결된 교량이다.

그러니까
토끼섬은
지도엔 안 보이지만
바로 아랫 쪽으로 있는
'궁전 다리'(дворцовый мост, 드바르초븨 모스트)와
'삼위일체 다리'의 사이에 위치해 있다.

오래전 이 지역에 살던
핀란드 사람들은 이 작은 섬을 Enisaari(토끼섬)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피터 앤 폴 요새'
(Peter and Paul Fortress)
'페트로파블롭스카야 크례파스치'
(Петропавловская крепость)
라는 공식 명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은 여전히
토끼섬(Hare or Rabbit Island, заячий остров, 자야취이 오스트랍)
이라고 부른다.

 



러시아가
이 섬에 요새를 건설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표트르 대제 이야기에서
이미 자세히 살펴 본 바 있지만
이 작은 섬은
당시 스웨덴 영토였는데도 불구하고
표트르 대제가
무작정 방어용 요새를 짓기 시작함으로써
발트해로 진출할 수 있는 조그만 거점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러시아의 200년 수도 역할을 한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아름다운 도시의 태동지가 되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이 요새는
6각형 모양의 성채로
6개의 코너마다 방어용 성루(Bastion)가 화살촉처럼
머리를 내밀고 있는 형상이다.

(피터 앤 폴 요새의 출입문)


위 안내지도의
오른쪽 성벽 중앙에 있는 문이
이 요새의 공식 출입문이다.

(피터앤 폴 요새의 중앙광장, 우측이 피터  폴 성당 좌측 끝에 매표소)


요새의 중앙에는
'피터 앤 폴 성당'
Peter and Paul Cathedral
(Петропавловский собор)
'페트로파블롭스키 싸보르'
바로
유람선을 타고 바라볼 때
높고 뾰족한 금빛 첨탑을 뽐내는 주인공이다.

성당의 왼편에는
입장권 매표소가 있는데
이 작은 건물은

원래
표트르 대제가
항해술을 익히기 위해 타던 작은 배를
보관하던 곳이라서
'보트하우스'(Boathouse)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곳의
성당, 박물관 등은
모두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데
모든 시설을 구경할 수 있는
종합권이 있고 한군데만 볼 수 있는 개별권이 있다.

(성 피터 앤 폴 성당 첨탑, 꼭대기는 십자가를 받쳐들고 있는 가브리엘 천사)


전세계
러시아 정교회 성당 가운데
그 첨탑이 123미터로 가장 높은
이 성당은
한때
상트페테르부르크 주교가 집전하는 대성당이었으나

지금은
카잔성당이 대성당으로 쓰이고 있다.

표트르 대제가 착공,
안나 여제 시대인 1733년 완공되어
오늘날은
표트르 대제를 비롯한
로마노프 왕조의 대부분 황제들이
이 곳에 잠들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성당 전면의 제단은
아름답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제단의 우측으로는

로마노프 왕조의 역대 황제들이

안치되어 있다.

(표트르 대제의 묘;뒤에는그의 흉상과 꽃이 장식되어 있다)

 

(표트르 대제가 사랑해서 하녀에서 일약 공동황제가 되었던 여인 예카테리나 1세가 표트르 대제 옆에 나란히 누워 있다)
(예카테리나 대제, 그녀의 남편 표트르 3세, 안나 여제 가 나란히 잠들어 있다)

 

(뒤쪽으로 파벨 1세와 알렉산드르 1세가 누운 곳도 보인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묘)

 

(알렉산드르 2세와 그의 부인의 묘, 보석류의 돌을 깍아서 만든 관)

***

 

(첨탑에 올라가기)


성당 본당을 돌아 본 후
첨탑에 한번 올라가 본다.

바깥에서 보면 엄청 뾰죽한 첨탑이라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종합권을 샀는데도
이 첨탑만은 입장료를 따로 받는다.
ㅠㅠ

(첨탑 안내도)

 

(종루, Карильон)


이 종들은
표트르 대제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맑은 종소리에 감명받아
귀국 후
네덜란드 장인들에게 특별의뢰해서 만든 것인데
당시의 종들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우리가 보는 종들은
그 후 네덜란드 기술자들을
다시 초빙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종루에서 내려다 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

(Grand Ducal Burial Vault, 귀족 납골당)


피터 앤 폴 성당
바로 왼쪽 뒤로는 작은 돔식 건물이
연결되어 있는데
Grand Ducal Burial Vault,
'귀족 납골당'이라고 한다.

성당 본당의 제단 앞에는
황제들과 일부 황후만 안치되어 있고
황제의 친척들이나 귀족들은
바로 이 건물에 안치되어 있다는 것.

***

(표트르 대제 동상)


별로
인체의 균형에 맞지 않게
조각된 동상이 하나 있는데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설자인
표트르 대제다.

작은 머리,
가느다란 손가락과 종아리는
그의 신체적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앉은 키가 보통 사람 키다.

그는
비를 맞으면서
오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지킨다.

뒤에
보이는 노란 색 건물은
피터 앤 폴 요새 경비병들이 근무하던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이 곳 공원 및 박물관 관리사무소이다.

(관광객 사진찍기용 토끼)

 

(감옥, тюрьма)


요새의
좌하단부에 있는 성루(Bastion)는
한동안 정치범 감옥(тюрьма, 튜리마)으로 쓰였는데
볼셰비키가
혁명을 일으키고 첨 한일은
이 곳의 정치범들을 풀어 준 일이었다고 한다.



***

피터 앤 폴 요새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 것을 끝으로
이번 러시아 여행도
막을 내렸다.

간간이
비가 내리는 날씨인데다
월요일 퇴근시간과 겹쳐 교통이 무척 혼잡했으므로
우리는 조금 넉넉히
공항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호텔에서 불러 준 택시는
공항까지 700 루블에 가기로 했다.
좀 싸다 싶었는데

길이 너무 밀리니까 기사가
호텔 직원 아가씨와 한참 통화를 한다.
직원 아가씨가 나를 바꾸더니
교통체증 때문에
택시비를 900 루블로 올려 달란다면서
양해를 구한다.

토끼섬 갈 때의
그 악덕 택시기사에 비하면
너무 착한 아저씨 같아서
100루블을 얹어서
1,000루블을 주었다.

공항에서
와인을 한병 사고 나니
수중에
딱 1,000루블이 남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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