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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선악과 이야기는 누구나 아는 내용이지만 선악과가 어떻게 생긴 과일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성경에는 단지 한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영어로 "frui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러시아로 "дерева познания 

добра и зла"라고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은 선악과가 인간의 지식 속에 있는 어떤 과일이었을까 추정해 보려는 끝없는 시도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선악과 하면 으레 사과를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여러가지 근거를 대면서 선악과가 무화과였을 것이다 또는 바나나가 분명하다는 등 그럴 듯한 주장을 내놓기도 합니다.


(사과설)

우리가 흔히 '선악과는 사과였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비판없이 받아들인 데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는군요. 아주 옛날에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에서 실과를 '말룸(Malum)'이라는 단어로 번역했는데 이 단어는 사과나 복숭아처럼 과육이 두툼한 과일을 통칭하기도 했지만 주로 '사과'를 의미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사과를 뜻하는 Malum은 모음 a가 장음인데 이를 단음으로 발음하면 '악(惡)'이란 뜻으로 바뀌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사과는 선악과'라는 연상작용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겁니다.

또 영국의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이 에덴동산 이야기를 주제로 한 대 서사시 '실락원'에서 선악과를 사과로 표현한 것도 사람들의 인식을 기울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사과 씨에는 미량의 청산가리 성분이 들어있다는 점 때문에도 역시 사과가 선악과일 것이라는 추측을 낳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현대인들에게 '사과'는 선악과 말고 또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요. 뉴턴의 만유인력 '사과'나 '애플'사의 로고로 사용된 '베어 먹은 사과'가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애플'사의 사과 로고는 한입 뜯겨나간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혹시 성경의 선악과를 상징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도 불러 일으킵니다. 과연 그럴까요?

또 어떤 문헌에서는 '앨런 튜링'(Allen Turing)이란 컴퓨터 천재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를 받은 후 1954년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먹고 자살한 사건을 기리는 의미에서 '애플'사 로고가 만들어졌다는 괴담을 버젓이 사실인 양 기록하기도 합니다. '앨런 튜링'은 원래 영국의 수학자이자 암호학자로 컴퓨터 공학와 인공지능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제2차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서 전쟁영웅으로도 추앙받았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럴 듯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러나 누군가 이 로고를 제작한 회사에 공식 질의한 결과, 그들은 '앨런 튜링'의 이야기 자체를 알지 못했다면서 애플사의 최초 로고는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그림(아래 사진 참조)이었고 나중에 이를 사과 이미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얼핏 체리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베어 먹은 자국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좀 허무한 대답이긴 하지만 애플사의 로고는 뉴턴의 사과에서 착안한 것이지 선악과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게 확실합니다.

(상: 애플사의 최초 로고 - 뉴턴이 사과나무 밑에 앉아있는 그림이었음, 중: 현재 사용중인 로고, 하: 애플의 캘리포니아 본사 건물 -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며 2017년 입주를 시작, 우주선을 닮은 원형이라서 Apple Spaceship이라는 별명으로 불림)

 

(무화과설)

일부 학자들은 에덴동산이 중동지역 어디에 있었을 것이란 전제 하에 중동에서는 재배되지도 않았던 사과보다는 이 지역에서 흔하게 자라는 무화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에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가 수치심을 느끼고 벗은 몸을 가린 나무 잎이 바로 무화과 잎이었다는 기록(창세기 3장 7절)은 이런 주장의 증거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또 미켈란젤로가 그린 로마 '시스티나' 교회당(Sistine Chapel)의 천장화에도 선악과가 무화과로 묘사되어 있으며 다른 이탈리아 화가들의 에덴동산 그림에서도 무화과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스티나 교회당의 천장화, 중간에 무화과 나무가 있다. 미켈란젤로 1512년 작)

 

 


수천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재배한 과실나무 중 하나라는 무화과(無花果)는 참 신비스런 과일이긴 합니다. 글자 그대로 꽃 없이 열리는 열매인데 꽃이 없다면 어떻게 수분 (受粉, Pollination)이 이뤄지고 번식할 수 있을까요? 그 비밀은 무화과 나무와 함께 진화해 온 '무화과 말벌'(Fig wasp)에 있다고 하는군요. 원래 겉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무화과에도 꽃은 있다고 합니다. 즉, 꽃이 껍질 속의 과육 속에 파묻혀 있다고 하는데요 두꺼운 껍질 때문에 일반 벌, 나비들은 당연히 수분의 매개체가 될 수 없답니다. 그런데 '무화과 말벌'은 아주 특수한 방법으로 수분 기능을 수행한다고 합니다. 무화과와 공생관계에 있는 이 '무화과 말벌'은 무화과의 두꺼운 껍질을 뚫고 알을 낳을 수 있는데 열매 안에서 부화된 새끼들은 암컷과 수컷으로 나뉘어 짝짓기를 시작합니다. 짝짓기 후에는 날개가 없는 수컷들이 온갖 정력을 쏟아 열매 껍질을 뚫어 통로를 만든 다음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암컷들은 유유히 통로를 빠져 나와 또 다른 무화과 나무 열매로 날아가서 알을 낳는 과정을 통해 무화과 속의 꽃가루를 옮겨 준다고 합니다.

(무화과 말벌, Fig wasp)

무화과는 풍부한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어서 민간에서는 정력제나 생식 촉진제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유대인 학자들에 따르면, 유대인들의 옛날 이야기 속에서 선악과는 무화과나 포도라고 전해져 왔다는데 무화과는 정력제, 포도는 술의 원재료니까 결국 금단의 열매, 선악과라는 것은 섹스와 연관된 과일이 아니었겠느냐는 해석도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무슨 상상인들 못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를 보고 말라죽게 만드셨는데, 원래 무화과 나무는 잎과 열매가 동시에 열린다고 합니다. 잎이 무성하면 열매도 많이 맺혀있어야 되는데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으면 길손의 허기를 메워주는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고 질책하십니다. 겉으로 외식하는 서기관처럼 남들 보는데서 기도하고 예배하지만 정작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랑과 자비는 한톨도 없는 사람들을 잎만 잔뜩 핀 무화과에 비유하시기도 했습니다.


(바나나설)

선악과에 대한 상상 가운데 가장 압권은 바로 '바나나'설입니다. 이 설은 '댄 쾨펠'(Dan Koeppel)이란 미국 저널리스트가 2010년 출판한 '바나나'란 제목의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이 책 내용 중 선악과 관련 부분을 누군가 요약한 것이 있어서 공유합니다.

"바나나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높고,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과일이며 인류가 처음으로 경작한 작물 가운데 하나다. 전체 곡물로 따져도 밀, 쌀, 옥수수 다음인 네번째로 생산량이 많다.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다. 커다란 풀이다. 그리고 바나나에는 씨가 없다. 다시 말해, 번식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그 많은 바나나를 만들까? 꺾꽂이 하듯 뿌리를 잘라 옮겨심기만 하면 바나나가 열린다. 많은 학자들은 사실 선악과는 바나나였다고 믿는다. 똑같은 에덴동산 이야기를 다룬 이슬람의 '코란'도 그것이 바나나였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분류학의 아버지인 '린네'는 자신의 저서 '자연의 체계'에 두 종류의 바나나를 실었는데, 일반적인 노란 바나나는 '무사 사펜티움'(Musa sapentium, 앎의 나무에서 열리는 ‘지혜의 바나나’), 녹색 플랜테인은 '무사 파라디시아카'(Musa paradisiaca, ‘천국의 바나나’)라고 명명했다. 그 이름으로 미루어 에덴동산에 바나나가 있었다고 '린네'가 확신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성경에 에덴동산이라고 묘사된 지역은 지금의 페르시아 만 앞바다 쯤이었다고 한다. 이 중동의 에덴동산은 바나나가 자라기에 적합했을 것이며, 바나나는 그곳 사람들에게 분명히 친숙한 과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중동은 바나나의 주산지로 요르단, 이집트, 오만, 이스라엘 등지에 바나나 농장이 있다. '린네'가 바나나에 붙인 속명(屬名) ‘무사(Musa)'는 바나나를 뜻하는 아랍어 ’마우즈(mauz)‘에서 유래했는데, 일반인에게 더 친숙하고 이 과일을 가리킬 때 더 자주 쓰이는 아랍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손가락’이라는 뜻의 ‘바난(banan)’이다. 순전히 비유로만 생각해도 바나나가 선악과로 더 그럴 듯하다. 바나나는 자고로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성적인 암시이며, 이브 역시 바나나처럼 무성생식으로 태어난다. 즉 바나나가 씨앗이 아니라 성장한 나무 일부에서 만들어지듯이, 이브 역시 아담의 갈비뼈에서 태어난 것이다.('댄 쾨펠' 저 '바나나'에서 요약)"

무화과설이나 포도설보다도 더 황당하고 선정적인 주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쾨펠'은 바나나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묶어서 356페이지의 두꺼운 책 한 권을 만들어낸 대단한 작가입니다. 선악과 이야기를 포함해 남미 바나나 농장의 인권 문제에서 유전자 변형 식품 문제에 이르기까지 바나나와 관련된 광범위한 지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선악과의 본질)

아무튼 이상과 같이 선악과에 관한 각종 설들을 살펴 봤는데 사실 이런 설들은 흥미롭기는 해도 쓸모는 전혀 없는 허황된 말들일 뿐입니다. 선악과의 본질을 이해하는게 중요하지 무슨 과일인지 규명하는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선악과라는 것을 애초에 창조하지 않았으면 될 것을 왜 이런 걸 만들어 놓고 사람을 유혹에 빠지도록 시험하는 것이냐면서 비난합니다. 그러나 이는 선악과의 본질을 잘 모르는 무식한 얘기입니다. 하나님은 형사가 함정수사를 하듯이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나 안 따먹나 지켜보다가 따 먹으면 올커니 하고 잡아다 벌 주려는 나쁜 마음을 가진 분이 아닙니다. 선악과는 창조주인 하나님이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을 택하셔서 사랑하는 자녀로 삼는다는 서약의 증표로서 하나님은 낙원을 사람에게 주는 대신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입양 서약서라고 합니다.

선악과를 먹는 행위는 바로 이 약속을 어기고 선과 빛만이 가득한 곳을 떠나서 악과 어둠이 있는 곳으로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 아버지-자녀 관계를 스스로 깨뜨려 버리는 일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것도 하나님의 영 대신 악의 영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도착하게 되는 종착지가 어디인지 잘 아시는 전능자로서 깊은 탄식을 하시는 것이지 비판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결코 저주를 퍼붓는 것이 아닙니다. 포르노 잡지만 보고 공부 열심히 안 하는 아들에게 '너 그러면 커서 고생하게 된다'고 훈육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저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십니다.


(창세기 2장)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Genesis 2)
8. And the Lord God made a garden in the east,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made.
9. And out of the earth the Lord made every tree to come, delighting the eye and good for food; and

in the middle of the garden, the tree of life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16. And the Lord God gave the man orders, saying, You may freely take of the frui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17.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you may not take; for on the day

when you take of it, death will certainly come to you.


(Бытие 2)
8. И насадил Господь Бог рай в Едеме на востоке, и поместил там человека, которого создал.
9. И произрастил Господь Бог из земли всякое дерево, приятное на вид и хорошее для пищи,

и дерево жизни посреди рая, и дерево познания добра и зла.
16. И заповедал Господь Бог человеку, говоря: от всякого дерева в саду ты будешь есть,
17. а от дерева познания добра и зла не ешь от него, ибо в день, в который ты вкусишь

от него, смертью умрешь.


(주요단어)

8. насадить는 "심다, 재배하다, (공원을) 조성하다", рай는 "낙원, 천국", Едем은 "에덴동산",
поместить는 "두다, 놓다, 들여보내다", создать는 "창조하다"

9. произрасти는 "자라게 하다"인데, "자라다, grow"의 뜻으로는 расти, вырасти 동사가 쓰인다.
всякий는 "온갖, 모든 종류의", дерево жизни는 "생명의 나무", посреди는 전치사로 "~의 한 가운데에"로 뒤에 생격이 온다. раярай의 생격.

16. заповедать는 "훈시하다, 명하다", говоря는 говорить 동사의 verbal adverb(동명사), в саду는 "정원에 있는"

17. вкушать, вкусить는 "맛보다, 체험하다", смертью는 смерть(죽음, 사망)의 조격, 따라서 смертью умрешь는 '죽음으로 사망한다'는 뜻이 되는데 중복되는 표현같지만 '생명이 끊어져 사라진다'는 의미로 보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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