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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는 예수님 시대의 유대지역 통치자로 '헤롯'(Herod)이란 이름이 계속 등장합니다. '헤롯'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마태복음 2장 1절에서 입니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 나시매 동방박사들이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언급되는 '헤롯'왕은 '헤롯' 왕가의 시조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거론되는 많은 '헤롯'들은 그의 자손입니다. 물론 이들은 각자 자신의 이름을 따로 갖고 있었으나 성경에서는 구분없이 '헤롯'왕으로 기록하고 있어 헷갈립니다. 먼저 시조에 해당하는 '헤롯대왕'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사건별로 등장하는 서로 다른 '헤롯'들은 헤롯대왕과 어떤 관계인지 정리해 봅니다.
 

[헤롯대왕]

유대 지역에는 다윗의 통일 왕국 시대 - 남북조 시대 - 바빌론과 앗수르 지배 시대 - 페르시아 지배 시대 - 그리스 계열의 헬레니즘 왕조(알렉산더, 프톨레마이오스, 셀레우코스) 지배 시대를 거쳐 BC 140년경부터 유대인들이 영토 주권을 잠시 되찾아 마지막 독립왕조인 '하스몬' (Hasmonean) 왕국을 세웁니다. '하스몬'의 통치자들은 유대교의 세계화라는 야무진 목표를 세우고 인근으로 영토를 넓히면서 이방인들을 유대교로 개종시켜 나갑니다.

특히 '하스몬' 왕국은 동남쪽에 위치한 '에돔' 지역을 개종시켜서 유대에 편입시키는데 이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헤롯 왕조의 시작을 열게 됩니다. 참고로 '에돔'인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입니다. '에돔' 족속에서 귀화한 장군, '헤롯 안티파테르 1세' (Herod Antiparter I)와 그 아들 '안티파테르 2세'는 '하스몬' 왕조의 말기,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로마제국에 아부하여 하스몬 왕족들을 제치고 권력을 독차지하게 됩니다. 성경의 '헤롯대왕'은 바로 '안티파테르 2세'의 아들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BC 37년 로마제국으로부터 유대 분봉왕으로 임명됩니다.

다시 말해, 유대인이 애써 건국했던 독립왕조는 다시 외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동시에, 유대 땅 전체가 오롯이 이방출신 '헤롯' 가문의 손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헤롯대왕'은 이방인이었던 만큼 유대인의 반란을 막고 정권을 유지하는데 노심초사합니다. 그는 하스몬 왕가의 공주와 결혼해 핏줄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유대인의 성전을 화려하게 재건축하여 유대인의 환심을 사는 한편 유대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 던져주고 지중해변에 '가이사랴'라는 신도시를 건설, 왕궁과 로마신전을 새로 지어 수도를 옮기는 대 역사를 벌입니다. 또 그의 생애 말년에는 동방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베들레헴 인근의 2살 이하 모든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는데(마태2장16절) 이는 그가 얼마나 반란세력을 두려워했는지 잘 설명해 주는 대목입니다.

 

(헤롯 가계도)

(헤롯 가계도)


[헤롯대왕 이후 - 세 아들의 분산 통치]

'헤롯대왕'이 BC 4년 죽은 이후에는 그의 여러 아들 중 3명이 분봉왕으로 임명되어 유대 땅을 나누어 통치하게 됩니다. '아켈라오'(Archelaus), '안디바'(Antipas), '빌립 2세'(Philip)가 바로 그들입니다. 위 표에서 붉은 색 선과 파란 바탕으로 표시된 사람들이 분봉왕을 지낸 사람들입니다. 위 세 명의 분봉왕 이후 왕위는 그들의 형인 '아리스토불루스 4세' (Aristobulus IV, 반역죄로 일찍 처형됨)의 아들인 '아그립바 1세'(Agrippa I)와 '아그립바 2세' (Agrippa II)에게로 이어집니다. 또 성경에서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 주는 '헤로디아' (Herodias)와 '살로메' (Salome) 등도 모두 '아리스토불루스 4세'의 직계들입니다. 유대지역 땅은 헤롯대왕 사후 아래 지도처럼 유대, 사마리아, 갈릴리, 골란, 베레아 등으로 분할되어 통치됩니다.

(헤롯시대의 유대지역 분할지도 및 헤롯대왕 이후의 분할 통치자)
 


(헤롯 아켈라오, Archelaus)

'아켈라오'는 팔레스타인 땅 가운데 유다와 사마리아 땅의 분봉왕이었습니다. 원래 '헤롯대왕'은 죽으면서 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 땅 대부분을 '아켈라오'에게 주려로 했으나 그의 과도한 반란세력 학살 사건을 동생 '안디바'가 로마황실에 진정함으로써 유다와 사마리아 땅만 차지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는 성경 마태복음 2장 22절에서 한번만 등장합니다.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됨을 듣고 가기를 무서워 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후 '헤롯대왕'의 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피난을 가셨다가 '헤롯'이 죽은 후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듣고 귀국하는데 하나님은 '아켈라오' 역시 위험헌 인물이기 때문에 유다 지역이 아닌, 비교적 정치적 민감성이 덜한 갈릴리 지역의 '나사렛'이란 작은 마을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언에 따른 '나사렛' 예수가 되었으며 공생애 이전까지 주로 갈릴리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아켈라오'는 그 후에도 계속 폭정을 펼쳐 로마의 초대 황제 '케사르'의 미움을 받고 권좌에서 쫓겨나 귀향을 가서 죽게 됩니다. '아켈라오' 이후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은 로마에서 파견된 '본디오 빌라도' 총독이 직접 관할하게 됩니다. 형을 끊임없이 질투하고 모함했던 '안디바'는 형이 쫓겨나면 그 지역을 자신이 차지하게 되리라 생각했을텐데 로마 총독에게 통치권이 돌아갔으니 참 허탈하지 않았을까요.

 


(헤롯 안디바, Herod Antipas)

헤롯 가문의 인물 중 가장 악독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안디바'란 이름은 나오지 않고 그냥 '헤롯왕'이라고만 되어 있어서 잘 구분이 되지 않는데, 헤롯 가문이 하나님께 저지른 악행 가운데 90% 이상은 바로 이 '안디바'의 소행입니다. 마태복음 14장, 마가복음 6장에 나오는 '세례 요한' 죽이기를 시작으로 해서, 누가복음 9장에서는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내가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면서 크게 당황하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3장 31절에서는 반란세력의 리더가 될 수도 있는 예수를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때가 이르렀을 때는 유대인 최고의 명절인 유월절이기 때문에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 갈릴리 분봉왕 '안디바'도 모두 예루살렘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은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재판을 요구하자 유대인들의 내부갈등에 끼어들기 싫었던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사람으로 갈릴리 관할 분봉왕인 '안디바'가 마침 예루살렘에 있으니" 안디바에게 예수를 심판하라고 보냅니다. '안디바'는 예수님의 이적 행하심을 확인하고 싶어 심문했으나 예수님이 잠잠히 계시자 업신여기고 희롱하여 '빌라도'에게 다시 보냅니다. 여기서 '빌라도' 총독은 최종적으로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함으로써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을 죽인 자로 매일 욕 먹고 있으나 사실 같은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가장 큰 죄인은 '안디바'일겁니다.

또한 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사울의 기독교인 박해도 바로 이 '안디바'의 집권시절에 있었던 사건들입니다. 더구나 '안디바'는 도덕적으로도 문란해서 자신의 조강지처를 쫓아내고 조카딸이자 동생 '빌립 1세'의 아내였던 '헤로디아' (Herodias)를 뺏어서 아내로 맞아합니다. '헤로디아'는 권력욕이 매우 큰 여자로서 '안디바'의 도덕적 비리를 질타하는 '세례 요한'을 죽이기 위해 '빌립 1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름다운 딸 '살로메(Salome)를 사주하여 '안디바'가 '세례 요한'을 죽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처럼 악행의 대명사 '안디바'도 결국 로마의 미움을 받아 유배지에서 죽습니다.

 

(헤롯 빌립 2세, Herod Philip II)

'빌립 2세'는 성경에서 그다지 악행과 중요한 사건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누가복음 3장 1절에 "헤롯이 갈릴리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임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위 지도에서 '헬몬산'이 있는 '골란' 고원을 의미하는 '골라니티스' (Gaulanitis)가 바로 이두래 지방으로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살던 지역입니다. '빌립'은 로마에 아부하는 의미에서 이 곳에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화려한 신도시를 건설하기도 합니다.


(헤롯 아그립바 1세, Herod Agrippa I)

'헤롯대왕'의 제 3세대 후계자는 둘째 아들 '아리스토불루스 4세' (Aristobulus IV)의 자손으로 이어집니다. '헤롯대왕'이 아들들의 반역을 의심하느라 첫째, 둘째 아들을 처형해 버리자 둘째 아들 '아리스토불루스 4세'의 부인은 자신의 아들인 '아그립바 1세' (Agrippa I)를 로마로 도피시킵니다. 거기서 로마 황제들과 친분을 쌓은 '아그립바 1세'는 바로 윗세대 분봉왕들이 모두 처형당하거나 죽고 나자 자연스럽게 팔레스타인 전체를 다스리는 분봉왕이 됩니다.

그는 AD37년부터 44년까지 짧게 군림하지만 그의 악행은 적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을 눈에 가시처럼 생각해서 예수님의 사도인 '야고보'를 참수하고 (사도행전 12장 2절), '베드로'도 처형하기 위해 옥에 가둡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으로 옥문이 열려 빠져 나오게 되지요. 악행의 결과인지 '아그립바 1세는 성경에 "벌레에 먹혀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도행전 12장 23절)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 (Josephus)는 '아그립바 1세'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그립바는 가이사의 영예를 기념하는 축제를 거행했다. 이 때 그 나라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축제의 두 번째 날에, 아그립바 왕은 순은으로 짜여진 참으로 멋진 의복을 입고 새벽에 원형극장으로 들어갔다. 태양 빛이 찬란하게 비치자 은으로 짜여진 그 옷은 신비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바라본 사람들은 기묘한 두려움과 경이를 느꼈다. 아첨꾼들은 아그립바 왕을 신이라고 부르면서 사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왕은 그들을 꾸짖지도 않았고 그들의 아첨을 불경스러운 것이라고 거절하지도 않았다. 그 일 직후에 왕은 고개를 쳐들고 그의 머리 위에 있는 줄 위에 올빼미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 아그립바 왕은 올빼미가 전에는 좋은 소식을 가져 왔었으나 이번에는 재난의 전조임을 인식하면서, 마음 속에 비수로 찔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왕은 갑자기 엄습한 강한 고통으로 인하여 복부를 움켜 잡았다. 5일간의 복통으로 탈진한 왕은 나이 54세에 즉위한지 7년째가 되는 때에 세상을 떠났다"

 


(헤롯 아그립바 2세, Herod Agrippa II)

성경에 '헤롯'으로 거론되는 마지막 인물입니다. 그도 역시 헤롯의 피를 받은 사람인 만큼 정치적 수완이 좋으면서도 인간적으로 매우 얍삽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민심교란죄로 체포된 사도 '바울'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사도행전 26장)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의 이적과 부활의 메시지를 듣고서는 그를 잡아두고 벌 줄만한 특별한 죄가 없으므로 로마에 항소하지 않았다면 당장 석방할 수도 있었을텐데 라는 공정한 판결을 내린 점에서(바울은 로마 시민권자로서 로마 법정에 항소를 했기 때문에 결국 로마까지 가서 최종 판결을 받아야 해서 당장 석방할 수는 없었음) 아주 나쁜 인간은 아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마태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마태2: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 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누가23:11]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잎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사도12: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사도26: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바울)이 가이사에게 항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 하였다 하니라

(Matthew 2:1)
Now when the birth of Jesus took place in Beth-lehem of Judaea, in the days of Herod the king, there came wise men from the east to Jerusalem,
(Matthew 2:22)
But when it came to his ears that Archelaus was ruling over Judaea in the place of his father Herod, he was in fear of going there; and God having given him news of the danger in a dream, he went out of the way into the country parts of Galilee.
(Luke 23:11)
And Herod, with the men of his army, put shame on him and made sport of him, and dressing him in shining robes, he sent him back to Pilate.
(Acts 12:12)
And when he became clear about this, he went to the house of Mary, the mother of John named Mark, where a number of them had come together for prayer.
(Acts 26:32)
And Agrippa said to Festus, This man might

 have been made free, if he had not put his 

cause before Caesa

 


(От Матфея 2:1)
Когда же Иисус родился в Вифлееме Иудейском во дни царя Ирода, пришли в Иерусалим волхвы с востока и говорят:
(От Матфея 2:22)
Услышав же, что Архелай царствует в Иудее вместо Ирода, отца своего, убоялся туда идти; но, получив во снеоткровение, пошел в пределы Галилейские
(От Луки 23:11)
Но Ирод со своими воинами, уничижив Его и насмеявшись над Ним, одел Его в светлую одежду и отослал обратно к Пилату.
(Деяния 12:12)
И, осмотревшись, пришел к дому Марии, матери Иоанна, называемого Марком, где многие собрались и молились.
(Деяния 26:32)
И сказал Агриппа Фесту: можно было бы освободить этого человека, если бы он не потребовал суда у кесаря. Посему и решился правитель послать его к кесарю.

 

***


'헤롯'은
러시아어로
Ирод (이롯)이네요.

Ирода(이로다)라는 이름은
우즈벡을 비롯해
러시아어권 나라에서 아주 흔한 여자 이름인데
'이로다'가 곧 '헤로디아'라니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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